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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낙태권 논쟁 |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1973)법학/법학 자료 2023. 6. 6. 00:31반응형
1. 본 판결의 핵심
1973년 1월 22일에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선고된 “로 대 웨이드” 사건은 미국 사법 역사상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았던 판결입니다. 해당 판결에서 연방 대법원은 연방 대법관 9인 중 7인의 다수 의견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 조항(Due Process Clause) 또는 제9조의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가 임신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right to privacy)”(「대한민국헌법」 제17조가 규정한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보호와 대체로 유사한 권리)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낙태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州) 정부의 이해(Government's Interests)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에 연방 대법원은 ‘임신 3분기 구분법(The Trimester Framework)’에 따라 임신 시기 별로 낙태를 달리 허용했습니다. 임신 1기(The First Trimester)인 초기 약 3개월 동안은 낙태가 출산보다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므로 주 정부는 의사 면허를 갖춘 자에 의해 낙태를 하도록 하는 것과 같이 최소한의 의학적 안전장치를 부과하는 것 외에 여성의 권리를 제한할 어떠한 조치도 마련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신 2기(The Second Trimester)인 대략 임신 4~6개월 사이에는 임신부의 건강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주 정부는 임신부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있어 합리적이고 협소하게 맞춤화된 낙태에 대한 의학적 규제를 제정할 강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신 3기(The Third Trimester)는 1970년대 초에 이용가능한 의학적 기술 하에서 태아가 생존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인 대략 임신 7개월(약 28주) 차부터로, 태아 생명을 보호할 주의 이해관계는 매우 강력해져 임신부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연방 대법원은 낙태권을 “기본적인(fundamental)” 권리로 분류하여 낙태에 관련된 법을 심사할 때에는 가장 엄격한 사법 심사 기준인 “엄격 심사(strict scrutiny)” 기준에 따라 판단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엄격 심사 기준은 정부가 강력한 국가 이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률이나 규정이 필요하고, 그 목적을 위해 협소하게 맞춤화 되었으며, 그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제한 수단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한 이의 제기된 법률을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2. 소송의 당사자였던 제인 로(Jane Roe)
사건명으로 불리는 “로 대 웨이드”는 대립하는 당사자로 사건을 표시하는 미국의 판례 표기 방식에 따른 것으로서 원고인 제인 로와 이 사건을 연방 대법원에 상고한 텍사스주 지방 검사인 헨리 웨이드(Henry Menasco Wade, 1914. 11. 11.~2001. 3. 1.)를 의미합니다. 공식적인 사건명은 조금 더 길지만 이를 압축시켜서 흔히 위와 같이 부릅니다.
원고인 제인 로는 가명으로 본명은 노마 매코비(Norma Leah Nelson McCorvey, 1947. 9. 22.~2017. 2. 18.)인데, 일생동안 그녀는 낙태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태어난 매코비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텍사스 주 휴스턴으로 옮겨와 살았고, 아버지는 그녀가 13살 때 가족을 떠나 결국 어머니와 이혼을 합니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는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에 의해 양육되었고, 아버지는 1995년에 사망합니다. 그녀는 10살 때 친구들과 함께 절도를 하여 법정에 섰고, 판사에 의해 가톨릭 기숙학교와 범죄자들을 위한 교정 학교에 보내졌습니다. 이후 그녀는 어머니의 사촌으로부터 강간을 당한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코비는 1963년인 16살 때 엘우드 매코비(Elwood McCorvey)라는 남성과 결혼했지만 1965년에 헤어졌습니다. 그녀는 1965년에 첫번째 출산을 하였고, 아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양육하였습니다. 그녀는 출산 후 심각한 음주와 약물 문제에 시달렸고, 레즈비언(Lesbian: 여성 동성애자를 이르는 말)으로 살았습니다. 그녀가 1966년 또는 1967년에 혼외자로서 출산한 두 번째 아이는 입양되었습니다.
매코비는 1969년인 21살 때 세 번째 임신을 했습니다. 그녀는 강간에 의한 임신은 낙태가 가능했던 텍사스주의 법에 의한 합법적인 낙태를 위해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흑인들에게 강간당했다”고 허위 신고를 했지만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불법적인 낙태 수술 계획도 실패한 그녀는 적합한 의뢰인을 찾고 있던 낙태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변호사들에 합류해 텍사스주 북부 지방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텍사스주를 대표하는 댈러스 카운티(Dallas County)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는 패소하자 바로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결국 매코비가 로(Roe)라는 이름으로 승소하지만, 이미 매코비는 딸을 출산했고, 아기는 입양되었습니다. 지방법원 소송 때부터 한 번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던 매코비는 연방 대법원에서 승소한 뒤 언론에 자신이 실업 상태이고 우울증이 심해 낙태하려 했다고 말하였지만, 10년 뒤인 1983년엔 당시 자신은 강간당했다고 언론에 말했고, 4년 뒤인 1987년엔 강간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말을 바꿨습니다. 매코비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태아 생명을 존중하는 자들부터 비난을 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녀는 1994년에 “나는 로입니다(I am Roe)”라는 자서전을 냈고, 1995년에는 복음주의 개신교로 개종해 침례를 받은 뒤 낙태를 불법화하기 위한 구출 작전 캠페인(Operation Rescue's campaign)의 옹호자가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연방 대법원 판결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후회하고 낙태 운동가들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에 매코비는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서 자신의 사건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 항소 법원은 2005년에 이를 기각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낙태 반대 운동을 활발히 하였으나, 2020년에 미국 TV 채널인 FX에서 방영된 “일명 제인 로(AKA Jane Roe)”에서 그녀가 죽기 직전에 인터뷰한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그녀는 금전적 동기로 낙태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즉 매코비는 “임종 자리에서의 고백(deathbed confession)”에서 자신은 여성이 낙태를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낙태 반대 운동은 돈을 받고 했었던 전적인 연기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은 대어(大魚)였고, 서로 도움을 주었으며, 돈을 받고서 그들이 말하라는 대로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세무 서류에는 그녀가 낙태 반대자로서 활동했던 시기에 반(反) 낙태 단체로부터 45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매코비를 20년 넘게 지켜보면서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함께한 한 가톨릭 신부는 그녀가 22년간 보여준 낙태 반대 운동은 진짜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매코비가 죽기 전 전화로 대화를 나눈 한 여성 동료는 그녀가 낙태에 대해 깊이 뉘우치는 말을 했었다고 전했습니다.
3. 본 판결 이후
연방 대법원은 1992년에 선고한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을 통해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필수적인 판시 부분을 재확인하면서도 일부를 수정하여 낙태 허용 기간을 확장했고, 2022년에 선고한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사건을 통해 헌법상 낙태권을 부정하면서 낙태 규제에 대한 권한은 각 주에 있다고 판시하여 “로 대 웨이드” 사건과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사건을 모두 폐기하였습니다.
연방 대법원의 입장 변화와 그에 따른 파장 및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사건과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사건에 대한 내용은 아래에 링크된 게시글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 게시글 링크:
[법학/법학 자료] - 미국의 낙태권 논쟁 | 연방 대법원의 입장 변화와 파장
[법학/법학 자료] - 미국의 낙태권 논쟁 |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1992)[법학/법학 자료] - 미국의 낙태권 논쟁 |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사건(2022)
*위 내용 중 “2. 소송의 당사자였던 제인 로(Jane Roe)”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2020년 10월 14일 자 기사인 “美대법원의 ‘낙태권’ 인정 받아냈지만, 그녀는 평생 오락가락했다”를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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